[창의적 노동] 불나라의 얼음화폐... 주관과 객관 사이
[창의적 노동] 불나라의 얼음화폐... 주관과 객관 사이
  • 윤소원 기자
  • 승인 2020.11.19 0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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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노동 [노동닷컴DB]
창의적 노동 [노동닷컴DB]

사회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인재들이 필요하다. 이들은 대학에서부터 체계적으로 훈련받아야 한다.

중간·기말고사도 과제나 교수 강의와 함께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중요한 부분이다. 중간· 기말 시험 문제 중 절반은 수업에서 다룬 주제들의 핵심 아이디어에 대해 묻는 정답이 있는 문제로 출제한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를 출제한다. 열린 문제는 "상상의 날개를 펴고 최대한 창의적으로 답하라’라고 하고, 창의성과 논리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지난 수업 중간고사 때 출제했던 열린 문제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1년 내내 섭씨 30도가 넘는 '불나라'가 있다. 이 나라에서 얼음을 화폐로 도입하는 효율적인 방법은?"

이 문제는 화폐의 본질에 대한 '돌화폐의 섬' 과제와 화폐에 대한 교수의 강의를 통해 화폐 본질에 대해 깊이 이해한 후, 이에 입각하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를 기대하며 낸 문제다.

이 문제는 화폐로서의 얼음이 녹아 없어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다. 나라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는 사람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따라서 상대적으로 평범한 답안은 냉장고, 아이스박스같이 얼음이 녹는 것을 막기 위한 용기를 이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한 학생이 낸 좀 더 독창적인 답안이 있었는데, 그것은 더워도 '녹지 않는 얼음'을 개발하여 화폐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더우면 얼음은 녹는다는 고정관념을 깬 답안이었다.

또 다른 답안은 속이 보이지 않는 볼투명한 작은 용기에 얼음을 넣어서 화폐로 유통하는 방법이다. 물론 얼음은 녹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용기 안에 얼음이 들어 있다고 믿기만 하면 화폐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화폐는 '믿음'이라는 화폐의 본질을 이해하면서, 얼음이 녹지 말아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깬 흥미로운 답안이었다.

또 다른 답안은 기존에 사용하던 지폐를 이름만 바꾸어 얼음이라 부르고, 얼음을 파운드나 달러처럼 화폐 단위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굳이 처음부터 얼음이라는 '실물'이 필요 없이, 얼음이라는 '이름'만 있어도 된다는 아이디어다. 특히 화폐란 무엇이 되었건 구성원들이 서로 화폐로 약속하거나 믿기만 하면 화폐가 될 수 있다는 화폐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에 입각하여 나온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또 다른 예라고 판단하였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출제한 또 다른 열린 문제는 다음과 같다.

"정부가 갑자기 대출을 금지했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 질지 상상해 보라."

"은행과 봉이 김선달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이제까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던 금융 상품을 개발하시오."

이 문제들도 모두 과제와 강의를 통해 얻은 은행과 금융 상품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에 입각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기를 기대하며 낸 문제들이다.

창의성 수업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 중 하나는 '창의성 평가'다. 이 수업에서는 강의계획서에서부터 "시험, 과제, 토론, 학기말 리포트 등의 평가에 있어서 창의성이 중요한 평가 요소"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창의성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정답이 있는 문제는 정답을 맞혔는지를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창의성은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계에서 쓰는 방법 중 하나는 복수의 평가자를 두는 방법이다. 이 수업에서도 열린 문제를 평가할 때, 교수도 평가하고 조교도 평가하여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확보하려 한다. 

또 다른 방법은 창의성 평가에 대해 이해 당사자 간의 생각에 차이가 날 때, 평가 경험이 많은 전문가가 최종 평가를 하는 방법이다. 이 수업에서는 그 역할을 담당 교수인 필자가 맡는다.

평가자들은 평가에 매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똑같은 답안을 때로는 몇 번씩 보면서, 혹시 답안에 숨겨진 정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놓치고 넘어가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면서 평가한다.

창의성 평가 시스템의 정착을 위해서는, 창의성에 대한 주관적 평가의 불가피성에 대해 피평가자들에게 미리 알려주고 동의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업 첫 시간에 필자는 학생들의 창의성에 대해 그 본질상 교수가 주관적 평가를 할 수 밖에 없음을 설명하고, 학생들이 이 수업을 계속 수강하는 것은 이러한 교수의 주관적 평가를 받아들이겠다는 상호계약에 동의함을 의미한다고 미리 이야기한다.

또한 창의성 평가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수업 중 학생들에게 창의성과 창의성 평가에 대한 강의와 토론도 진행한다. 특히 독특한 시험 답안 등을 이용해 구체적 예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창의성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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